2021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오늘날에 4차 산업혁명시대라는 말은 이제 당연한 표현이 돼 버렸다. 2005년에 출간된 책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농경의 시작을 인류역사에서 1차 혁명으로 보았지만, ‘한계비용 제로 사회(Zero Marginal Cost Society, 2014)’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증기기관의 발명에 의한 대량생산의 기반 제공을 1차 혁명으로, 1890년에 시작된 가정용 전기 보급을 2차 혁명으로 보았다. 이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증기기관 발명을 두 번째 혁명으로 보는 것과 차이가 있지만, 3차 혁명에 대해서는 1995년의 상업 인터넷, 이른바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의 등장이라는 데에서 일치된 관점을 보여준다.
[인류 역사에서의 4차 산업혁명의 비교]
한편, 4차 산업혁명의 원인이나 시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대체로 디지털 정보기술의 영향력이 크게 증대된 2016년 전후로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변화에서 앞의 세 번은 식량이나 물건을 만드는 제조업의 변화에 그 핵심이 있었으나, 4차 산업혁명은 보다 포괄적인 요인인 ‘정보’에 초점이 있음을 볼 수 있다.
토머스 피케티(Thomas Piketty, 1971~)는 저서 ‘21세기의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2014)’에서 새로운 세기(世紀)의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은 달력 상의 날짜가 바뀐 뒤로 10~20년이 지난 이후 부터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견해와 같이, 21세기가 시작되고 20년이 지나는 오늘날은 그야말로 4차 산업혁명의 격랑과 변화가 여러 산업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와 같은 기술 패러다임 변화의 한가운데에 바로 오늘날의 자동차가 자리잡고 있다.
전통적인 기계공업의 한 분야로 인식돼 온 자동차산업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변화를 거쳤을까? 그 과정을 살펴본다면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을지 모른다.
기술 패러다임 변화의 관점으로 본다면, 인류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의 발명은 자동차산업에서의 1차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가솔린 엔진에 의해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의 발명으로 동물의 힘에 의존하던 마차에서 벗어난 개혁적 변화 이후 자동차는 다양한 사회적, 산업적 요인에 의한 변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1886년에 등장한 최초의 가솔린 차량 벤츠의 3륜차와 다임러의 4륜차]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는 1886년에 독일의 카를 벤츠(Karl Benz)와 고틀립 다임러(Gotlieb Daimler)가 제작했는데, 이들은 각각 칸슈타트와 만하임이라는 도시에 살면서 자전거 부품과 마차 부품을 이용해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몰랐으며, 생존 기간 동안 교류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각각 자동차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그들 두 회사가 1925년에 다임러-벤츠로 합병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08년형 포드 모델 T는 대량생산방식의 상징이다]
한편, 미국의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가 포드자동차를 설립(1903)한 뒤 1908년에 개발한 모델 T는 그 전까지 수공업적으로 제작되던 자동차를 부품규격화를 통한 조립방식으로 바꾸는 기술 개량을 1915년에서 1921년에 걸쳐 완성하면서 대량생산방식을 창안했다.
이후, 포드의 대량생산방식(Fordism)은 다른 산업 분야로 파급되어 20세기를 대표하는 혁신을 이끌게 된다. 놀랍게도 이는 달력 상의 날짜 변화와 기술 변화 시점이 차이를 보인다는 토머스 피케티의 주장이 100년 전에도 들어맞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포드의 대량생산방식은 아무런 옵션도 없이 획일화된 검정색 단일 모델 T형의 생산에 의한 것이었다. 이후 포디즘은 경쟁사였던 GM에 의해 보다 다양화된 디자인과 옵션을 가진 차량을 제조하는 방식으로 발전시킨 알프레드 슬로언(Alfred P. Sloan Jr; 1875~1966)에 의해 체계화된 대량생산방식으로 진화하게 된다.
[1959년형 캐딜락 엘도라도는 테일 핀을 가진 디자인으로 스타일 우선주의의 대표 차량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산방식은 1950년대에 이르러 화려한 테일 핀(Tail-fin) 장식의 차량 등장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시기를 예술사조에서는 아르데코(Art-Déco)의 시기, 일명 ‘미친 시대’라고도 표현한다.
그것은 현란하게 번쩍이는 금속장식을 가진 이 시기의 화려한 자동차 디자인이 때마침 이루어진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황금유물의 발굴로 인해, 많은 이들이 화려한 장식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에서도 원인을 찾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화려한 차량들은 1980년대에 이르러 비효율적 디자인으로 비난받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디자인을 보여준 시대로 재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1971년에 등장한 쿤타치는 슈퍼카의 시초와도 같다]
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는 오일쇼크에 의한 자동차의 고성능화와 활용성 향상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 시기에 등장한 차량 중에는 오늘날 고성능과 창의적 차체 디자인을 가진 이른바 슈퍼카의 시초가 된 차량으로 이탈리아의 거장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Marchello Gandini; 1938~)에 의해 디자인된 미래지향적 차체 디자인으로 1971년에 등장한 쿤타치(Countach)가 가장 대표적이다.
[1982년형 크라이슬러 미니밴은 공간 활용성 개념을 제시했다]
한편으로 오일쇼크에 의해 경영난에 처했던 미국의 빅3중 하나였던 크리이슬러(Chrysler)는 승용차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공간 활용성을 높인 미니밴을 개발해 새로운 유형의 차량을 창조해낸다. 이처럼 다양한 특징을 가진 차량의 등장은 이후의 자동차 개발에서 성능과 공간 활용성이라는 개념을 정착시키게 된다.
[2015년에 등장한 벤츠 F-015는 자율주행과 디지털화의 시작이다]
이후 21세기의 특징을 대표하는 자동차가 2015년에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율주행기능을 가진 F-015이다. 4인승 승용차로 제작된 이 차량은 스스로 도로를 이동하는 거실과도 같은 미래의 모빌리티(Mobility)의 개념을 공식적으로 처음 제시했다.
‘모빌리티’의 개념은 기존의 자동차에서 더욱 확대된 개념으로서, 여기에는 하드웨어(hardware)로서의 자동차뿐 아니라, 다양한 개념과 형태의 이동을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가 포함돼 있다. 개념으로서, 여기에는 하드웨어(hardware)로서의 자동차뿐 아니라, 다양한 개념과 형태의 이동을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가 포함돼 있다.
20세기의 자동차가 하나의 기계로서의 차량이 도로를 주행하는 것이었다면, 미래의 모빌리티는 다양한 정보의 공간, 이른바 정보의 클라우드(cloud) 속에서 연결되어(connected) 정보를 주고받으며 운행하는 자율주행 기능을 가진 다양한 이동의 도구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동의 도구에는 지상을 주행하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하늘을 나는 드론(dron)과 같은 소형 비행체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Urban Air Mobility)와 개인용 항공체(PAV; Personal Air Mobility) 등의 다양한 비행체를 모두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 될 것이다.
[자동차 디자인의 변화는 미래의 모빌리티 디자인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차와 자전거 부품을 이용해 가솔린 엔진동력을 단 것에서 비롯돼 이제 막 134년의 역사를 가지고 발전해 온 자동차 디자인의 변화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 5000년동안 이루어진 네 번째 혁명의 한 가운데에서의 변화를 통한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과연 미래의 자동차, 새로운 시대의 모빌리티는 어떤 변화된 감성과 디자인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지나간 자동차의 역사는 분명 빛 바랜 과거가 틀림없다.
그러나 과거가 없이 현재가 존재할 수 없듯이, 현재는 또한 새로운 미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에서 오늘날의 4차 산업혁명시대에 우리는 과거의 자동차 디자인을 돌아보며 미래의 모빌리티의 모습을 디자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글: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