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정영철 자동차 디자인 칼럼니스트] 자동차 디자인에 다시 부는 레트로 바람, 이유는 뭘까?
  •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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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 한때 유행했던 스타일이 몇십 년 후에 또다시 최신 유행 스타일로 부상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패션 업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이 흐름은 패션 이외의 분야에서도 유효하다.

 

최근에는 ‘레트로 감성’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 유행했던 패션 스타일뿐만 아니라 음악, 그래픽, 색감 등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독특한 감성을 풍기는 것들의 인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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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MBC '놀면 뭐하니?']

 

최근 자동차 디자인에도 레트로 바람이 불고 있다. 2000년대에 이미 폭스바겐의 비틀, 포드 머스탱, 쉐보레 SSR 등 자동차 업계에는 한차례 레트로 바람이 강하게 불기도 했다. 이후 이런 시도들은 계속 있어왔지만 2020년이 되어 다시 주류로 부상한 것이다.

 

이런 유행의 이유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과거에 대한 향수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전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체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 또한 열광하는 것을 보면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이전의 것들이 지금에 와서 오히려 신선하고 특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몇 십년 전에 유행한 스타일이 촌스러워 보이는 시기를 지나고 다시 새로워 보이는 주기가 찾아온 것이다.

 

최근 자동차 회사들은 이렇게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세대와 젊은 세대 모두에게 폭넓게 어필할 수 있는 레트로 디자인 차들을 전략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1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45 컨셉트’를 공개했다.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한 포니 쿠페 컨셉트카를 오마주한 디자인에 전기 구동계를 적용했다. 차명의 ‘45’는 포니 쿠페 콘셉트의 탄생 45주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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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포니 쿠페 컨셉트카는 자동차 디자인계의 거장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의 작품이다. 70~80년대를 주름잡은 쐐기형 실루엣을 날렵하게 풀어냈다. 현대차에게는 회사의 첫 컨셉트카라는 상징성이 큰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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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컨셉트’는 포니의 상징적인 쐐기형 실루엣과 단순하고 직선적인 디테일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또한 특징적인 C필러의 두꺼운 면도 유지했다. 더불어 차량 옆면에는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 면을 접목했다. 곡선과 복잡한 디테일을 많이 사용하는 디자인 흐름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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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구동계를 통해 비교적 작은 차체에도 넓은 실내공간을 구현할 수 있는 패키지 상의 이점도 이런 디자인을 구현하는데 한몫을 했을 것으로 예상한다.

 

현대자동차는 내년 전기차 전용 브랜드 ‘아이오닉(IONIQ)’의 첫 번째 출시 모델인 ‘아이오닉 5’를 통해 이 컨셉트카의 양산형 차량을 선보일 계획이다. 새로운 전기차 브랜드에서 처음으로 출시할 차가 과거 포니의 디자인을 오마주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폭넓은 소비자층에게 어필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랜드로버는 최근 국내시장에 신형 디펜더를 출시했다. 레트로 디자인을 적용하고 구형의 바디 온 프레임 구조를 모노코크 구조로 변경해 온로드 주행성능까지 대폭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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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디펜더는 오리지널 디펜더의 견고하면서도 독창적인 디자인을 새롭게 재해석했다. 아이코닉한 실루엣을 완성하는 높은 차체, 전후방의 짧은 오버행은 탁월한 진입각 및 이탈각을 구현한다. 이와 함께 깔끔하게 정리한 표면 처리와 굵은 수평선을 강조한 숄더, 사각형의 휠 아치는 강인하고 견고한 이미지를 만든다.

 

2열 루프에 위치한 ‘알파인 라이트’와 ‘사이드 오픈 테일게이트’, 외부 스페어타이어 등 오리지널 디펜더 고유의 디테일도 현대적인 모습으로 새롭게 적용했다. 더불어 독특한 앞뒤 LED 램프에서 개성이 잘 드러난다.

 

포드 또한 신형 브롱코를 선보이며 오리지널 브롱코의 모습을 되살렸다. 브롱코는 포드가 1965년 선보인 본격적인 오프로드형 SUV로, 1996년 5세대 모델 이후 단종됐다. 신차는 단종 이후 24년 만에 새롭게 출시된 6세대 모델이다. 신형 브롱코는 시장에서 지프 랭글러와 정면으로 경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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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 디자인은 1세대 오리지널 브롱코의 특징을 그대로 잇는다. 그릴부터 램프까지 하나의 틀 안에 들어간 디자인, 동그란 헤드램프, 각진 차체의 특징을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견인고리, 터레인 타이어 등 본격적인 오프로드 주행을 위한 장비도 장착한다.

 

형태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색상에서도 이런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다. 한 프랑스계 자동차 회사의 디자이너는 “최근에는 ‘나르도 그레이’, ‘초크 화이트’ 같이 펄(pearl) 기운이 적은 색상이 트렌드다”라며 “이런 색상은 60~70년 대에 유행한 색상”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몇 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선 다시 소비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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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최근 자동차 업계에 불고 있는 레트로 바람. 그 배경에는 폭넓은 소비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과 함께 브랜드의 상징적인 모델을 다시금 부활시켜 그 존재감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었다. 이미 포르쉐 911, 미니 쿠퍼, 지프 랭글러와 같은 차들은 상징적인 헤리티지 모델들이 시장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동차 디자이너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 혹은 현직 디자이너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생각지도 못한 흥미로운 레트로 모델 프로젝트가 진행 중에 있었다. 그런 만큼 앞으로 더 다양한 헤리티지 모델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더불어 한국 자동차 브랜드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레트로 디자인의 양산차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기대가 된다.

 

[글: 정영철 자동차 디자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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